2004/05/17 16:23
by 노장오 인워드 브랜딩 대표


진로의 소주처럼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구매할 정도의 제품이 되면 경쟁 브랜드가 이를 공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하기만 하면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른바 ‘대명사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꺼비에서 참이슬까지 대를 이어 한국 소주 애호가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온 진로의 브랜드 때문에 항상 울상인 기업이 바로 두산이다.

두산은 1990년대 후반 ‘쌀이 준 선물’이라는 컨셉트의 미(米)소주를 출시, 참이슬의 아성에 도전했다. 하지만 엄청난 광고와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반년 만에 시장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잘못됐던 것일까?

당시 사람들은 미소주에서 ‘미소’ ‘소주’ ‘쌀’ ‘부드러움’ ‘아름다움’ 등 여러 이미지를 떠올렸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다양한 이미지, 그것도 긍정적이고 좋은 이미지여서 나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브랜드 관점에서 다시 보면 이것이 바로 가장 큰 약점이다. 이미지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브랜드 지표 중에서 ‘브랜드를 제시했을 때 그 브랜드에 대한 연상들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측정하는 지표가 있다. 이를 ‘브랜드의 이미지 집중력’이라고 한다. 미소주의 약점을 전문용어로 표현하면 ‘브랜드의 이미지 집중력이 낮다’고 말할 수 있다.

강력한 경쟁 브랜드가 있는 시장에서 신제품을 출시할 때는 브랜드를 최대한 빨리 인식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단기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브랜드는 중장기적으로도 버텨낼 수 없다. 이때 단기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브랜드의 이미지 집중력을 키우는 것이다.

흔히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브랜드가 가장 좋은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뜻이 좋은 브랜드가 모두 경쟁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의 경쟁력은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이 하는 연상과 얼마나 일치하느냐에 있다.

그린소주 이후 미소주와 뉴그린의 잇따른 참패. 그러나 두산은 포기하지 않고 2001년 1월 ‘산’소주라는 브랜드를 내놓았다. ‘산’ 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산·나무·푸름·자연·숲 등의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깨끗하고 푸른 느낌이다. 한마디로 연상되는 단어들의 이미지가 통일돼 있다.

푸른 병 속에 들어 있는 깨끗함이라는 이미지로 녹차소주인 산소주는 출시 9개월 만에 1억병을 판매하고, 수도권 시장에서 점유율 15%를 기록하는 등 성공적으로 시장에서 자리잡았다. 단기전에서 진로와 어깨를 견줄 수 있었던 것. 이것이 바로 이미지 집중력의 힘이다.

녹차소주라는 컨셉트의 산소주도 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산이 확정되기 전에 고려됐던 이름 중에 ‘심청’이 있었다. 미소주의 실패를 거울삼아 두산은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심청전의 주인공을 브랜드화하려고 했다. 친근하면서도 맑고 깨끗한 심청의 이미지가 한국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소주와 잘 어울린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心淸’ (심청)으로 표현하면 녹차소주의 특징도 자연스레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점도 있었다. ‘심청’이라는 전통적인 캐릭터 때문에 사람들이 소주보다는 전통주를 더 쉽게 연상한다는 것. 이미지를 집중시키는 데 주력하다가 소주라는 제품의 본질을 놓친 결과다. 일단 소주 브랜드가 소주 브랜드답지 않으면 이미지 집중력의 높고 낮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런 이유로 심청은 인당수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그때 소주 브랜드였던 ‘그린’을 확장해 ‘꿈에그린’을 브랜드로 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지금은 아파트 브랜드가 된 ‘꿈에그린’이 소주 브랜드로 태어날 뻔했던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이 역시 문제가 있었다. ‘그린’을 확장하기에는 갖고 있는 ‘그린’의 힘이 너무 약했다. 잘못하면 녹차소주라는 신제품의 특성마저 희석될 염려가 있었다.

최종안인 산소주는 의외로 간단하게 만들어졌다. 두산(斗山)이라는 기업 상호에서 ‘산’이라는 글자를 따온 것이다. 산이라는 단어에 친밀함을 가지고 있던 두산에서 녹차소주라는 이미지를 기업 이미지와 연계시킨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브랜드는 또다른 효과도 있었다. 두산 내부에서 ‘산’이라는 브랜드를 굉장히 친숙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들에게 친숙한 ‘산’이 고객에게도 신제품의 특징을 전달하는 데 가장 좋은 이름이었던 것.

덕분에 두산 직원들은 새로운 브랜드로 마케팅을 펼쳐나갈 힘을 얻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발상이자 가까운 곳에서 답을 찾은 마케팅 전개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주와 녹차의 산뜻한 만남’을 컨셉트로 한 산은 런칭 때 ‘첫잔부터 끝잔까지 山(산)뜻해서 山(산)소주’라는 카피를 내세웠다. 정말로 뒤끝이 산뜻할 것 같은 느낌이다. 브랜드와 카피는 실과 바늘처럼 항상 붙어다닌다. 브랜드가 꿈이라면 카피는 해몽이다. ‘산뜻해서’라는 카피는 깨끗하고 뒤끝이 없다는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산이라는 브랜드에 신뢰성을 부여했다.

이렇듯 이미지가 집중돼 있으면서도 다양한 광고 카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산뜻’이라는 단어는 경쟁사인 진로에서 이미 상표 등록까지 해놓은 단어라는 것이다. 하지만 슬로건으로 사용하는 데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진로로서는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강력한 경쟁자가 있는 시장에서 신제품을 성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진입 후 되도록 빨리 브랜드를 인지시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성공하는 브랜드의 첫째 요건은 이미지 집중력이 높은 브랜드 네임을 만드는 것이다.

다른 요건은 브랜드와 궁합이 잘 맞는 카피를 만드는 것이다. 가령 ‘세계를 휩쓴 휘센’을 보자. ‘휩쓴’과 ‘휘센’이 묘하게 반복되고 또 연상 작용을 일으키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어쨌든 산소주는 브랜드의 이미지 집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원문: http://knowyoume.pe.kr/main/view.asp?seq=1048&cr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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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woong~